천혜의 경관 속에서 느껴지는 역사의 숨결
화진포 역사안보 전시관, 대 자연속의 역사 산책에 초대합니다.
짙푸른 소나무 숲, 넓은 호수, 명사십리와 청정바다 한데 어우러져 좀처럼 보기 힘든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연출하는 화진포호- 이 아름다운 천혜의 경관 속에 우리나라 현대사의 중요한 한 페이지를 장식한 세 인물에 대한 역사 산책에 초대합니다.


이승만 별장
대한민국 초대 이승만 대통령이 머물렀던 이승만 별장은 1954년 신축한 후 1961년 폐허되어 철거되었으나, 1999년 7월 육군에서 본래의 모습대로 신축 복원하여 이승만 초대대통령 유가족들로부터 유품 53점을 기증 받아 전시관으로 운영하고 있다.
이승만 별장에는 집무실, 침실, 응접실 등이 그대로 재현돼 있다. 특히 당시 사용하던 놋그릇세트, 침대, 화장대, 낚시도구, 두루마기 등 진품이 그대로 전시돼 탐방객들의 눈길을 끈다.

이승만.(李承晩 1875~1965)
독립운동가. 초대 대통령. 초명은 승룡(承龍). 호는 우남(雩南). 본관은 전주. 황해도 평산 태생. 3세 때 서울로 이주, 1895년(고종 31) 배재학당을 졸업하였다. 명성왕후 시해 보복사건에 연루되었으나 위기를 모면하였다. 이 무렵 개화사상에 심취하고 그리스도교에 입교하였다.
독립협회 간부와 〈협성회보(協成會報)〉의 주필로 활약하였고, 98년 정부전복 획책혐의로 종신형 복역 중 7년 만에 석방되어 도미하였다. 1910년 프린스턴대학을 졸업하고 한일합병 후 미국에서 독립운동을 하였고 3· 1운동 후 상하이〔上海〕 임시정부에서 초대국무총리를 역임하였다.
45년 광복 후 귀국하여 민족통일총본부 등 우익세력의 연합조직체를 만들어 우익의 지도자로 부각되었다. 48년 대한민국 초대대통령에 취임하여 철저한 반공· 배일정책을 폈다. 6· 25전쟁 때는 휴전을 반대하였고 52년 재선이 어렵게 되자 헌법을 대통령 직선제로 개정, 대통령에 재선되었다. 54년 대통령의 연임제한을 철폐하는 사사오입개헌을 강행하였고 56년 제3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60년 3· 15부정선거로 일어난 4월혁명으로 하와이로 망명하였다. 망명생활 중 사망하였고 국립묘지에 안장되었다.

김일성 별장
한국전쟁이전 1948년부터 김일성과 그 가족들이 하계 휴양했던 곳으로, 당시 지상 2층, 지하 1층 건물이었으나 전쟁중 훼손된 것을 1964년 현재의 건물로 재건축하고, 1999년 7월 안보전시관으로 개수하여 운영하고 있다.
김일성 별장에는 침실이 재현돼 있으며, 전화기, 라디오 등이 전시돼 있다.

김일성.(金日成 1912~94)
북한의 최고권력자. 본명은 성주(成柱). 1919년 7세 때 부모를 따라 만주로 이주하여 그곳에서 어린시절을 보냈으며, 23~24년 혼자 평양으로 돌아와 창덕학교를 다녔다. 김일성의 항일운동 경력에는 의견이 분분하며, 우리나라의 관련문헌과 북한문헌의 서술이 대조적인데, 북한의 문헌들은 그의 활동을 사실 이상으로 미화시키고 있다. 32년 4월 안투현〔安圖縣〕에서 동료들과 함께 반일인민유격대를 결성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보천보전투 등 여러 차례의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 39년 말부터 일본군의 항일군에 대한 대토벌로 타격을 받고, 41년 부대를 이끌고 소련 영내로 이동하였다. 광복 후 소련군과 함께 북한으로 돌아와 45년 10월 평양시 군중대회에서 북한 대중에게 처음 모습을 나타냈으며, 48년 조선인민민주주공화국이 수립되면서 내각수상에 취임하였다. 53년 박헌영(朴憲永)파를, 56년 최창익(崔昌益)파를 숙청하는 등 반대세력을 제거하여 자신을 정점으로 한 유일지도체계확립의 기반을 닦았다. 65년 주체사상을 제창하면서 이 사상을 북한사회의 유일사상으로 만들려고 하였으며, 주체사상을 현실에 본격적으로 적용하는 70년대 들어서면서 그의 유일 지도체제는 더욱 강화되었다. 72년에는 주석제도를 신설해 주석에 취임하였다. 80년대 들어서자 공개적으로 아들 김정일(金正日)을 자신의 후계자로 키우는 작업에 착수하여 91년 김정일을 인민군 최고사령관으로 추대하였다. 92년에는 자신은 대원수로 추대되었으며 김정일을 원수로 추대하여 권력승계 작업을 마무리해가다가 94년 7월 8일 사망하였다.

이기붕 별장
이기붕 별장은 1920년대에 외국인 선교사들에 의해 건축되어 현재까지 보존된 건물로써 해방이후에 북한공산당 간부 휴양소로 사용되어 오다가 휴전후에 부통령이었던 이기붕의 처 박마리아가 개인별장으로 사용하였다. 1999년 7월 전시관으로 개수 운용하고 있다.
별장내 집무실과 응접실 등이 갖춰져 있으며, 주전자, 촛대, 문갑 등이 보관돼 있다.

이기붕.(李起鵬 1896~1960)
정치가. 호는 만송(晩松). 서울 태생. 연희전문학교를 중퇴하고, 미국 데이버대학 문과를 졸업하였다. 광복 후 이승만(李承晩)의 비서로 정계에 투신, 자유당을 창당하고, 서울6시장, 국방부장관, 민의원 의장 등을 역임하였다. 1960년 부통령에 출마하여 당선되었으나, 4월혁명으로 사임하고 경무대(景武臺)로 피신하였다가, 장남 강석(康石)의 권총으로 전가족이 집단자살하였다.

관람 시간
여름: 09:00-18:00 / 겨울: 09:00-17:00

입장료
어른: 개인 1,500원, 단체 1,000원
학생: 개인 1,000원, 단체 800원

교통
자동차: 반암 해수욕장-거진-화진포(10분 소요)
시내 버스: 반암 해수욕장-거진-화진포 하차(15분 간격 운행)

 

Copyright ⓒ 2002 반암타운 All rights reserved Design by Minbaknet.com
강원도 고성군 거진읍 반암리 175번지 Tel. 033-682-8300